Thinking #016
- 예수님의 12제자를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의 능력-
- 예수님의 12제자를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의 능력-
예수님의 12제자와 그들의 능력
(2026.06.15.
Learnmore & GPT 5.5)
💭 일기 – 예수님의 12제자를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의 능력
오늘은 예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를 떠올리며 새벽 미사를 드렸다. 주임 신부님께서 고민을 말씀하시며 본당을 꾸려감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어떤 형제, 자매님들에게 어떤 역할을 드리며 함께 성 공동체를 꾸려나갈지 고민이라 말씀하셨다. 그 순간 성경적 제자됨과 현대 사회의 능력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묵상하며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식이 짧아 성경을 찾아가며, 그리고 나의 현대 스승인 AI(인공지능, GPT 5.5버젼의 LLM모델)와 대화하고 질문하고, 정리하고 생각하며 제자들은 모두 완전한 사람들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성품과 배경, 기질과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결핍을 배제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결핍을 통과하여 새로운 사명으로 빚어가셨다. 그래서 예수님으로써 한명의 사람이자 주님의 아들이자, 주님으로 존경받는 듯하다.
능력이란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 아닐 것이다. 성경에서의 능력은 하나님 앞에서 정련되고, 공동체 안에서 사용되며, 자기부인과 성찰에 근거한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방향을 얻는 힘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열두 제자의 특징을 통해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다시 정리해보려 한다.
베드로는 충동적이고 앞서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고백했고, 누구보다 쉽게 무너졌다. 예수를 부인한 실패가 있었지만, 그 실패 이후 다시 회복되어 초대교회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베드로에게서 배울 능력은 결단력과 회복탄력성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제자됨은 완벽함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주님의 부르심을 다시 듣는 순종의 자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베드로 처럼 말이다.
안드레는 크게 드러나는 인물은 아닌듯하다. 하지만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베드로를 예수께 데려왔고,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한 아이를 예수께 소개했다고 성경에는 말씀하신다.
안드레에게서 배울 능력은 연결력인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탁월한 능력은 자신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가능성과 기회, 문제와 해답을 연결하는 것이다. 조용히 다리를 놓는 사람의 능력은 작아 보이나, 공동체 안에서는 깊고 오래 남는다. 그능 뒤에서 희생하며, 모든 관계에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AI(인공지능)이하지 못하는 AI 시대 넘어에 있는 무엇인가가 아닐까 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우레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강한 기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뜨거웠고, 때로는 급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열정은 주님의 손 안에서 헌신의 방향으로 다듬어졌음이 나타난다.
야고보에게서 배울 능력은 열정의 정화이다. 현대 사회에서 열정은 필요하지만, 방향 없는 열정은 쉽게 폭력이나 조급함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나의 방향성을 근거없이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때로는 수요자인 학생에게는 폭력 처럼다가올 수 있다. 내가 과거에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제자의 열정은 자기 야망을 관철하는 힘이 아니라, 부르심 앞에서 자신을 내어드리는 헌신으로 성숙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야고보에게서 배울 수 있다. 열정의 정화 이는 주변인을 세심하게 살피는 배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이 아니었을까 한다.
요한은 예수께 사랑받은 제자로 기억되는 듯하다. 그는 예수의 곁에 가까이 있었고, 십자가 아래에서도 끝까지 머물렀다. 그의 삶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진리를 바라보는 내면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사랑을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아닌, 기도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천을 통해서 보여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한에게서 배울 능력은 사랑의 통찰력이다. 현대 사회는 분석과 경쟁을 중시하지만, 사랑이 없는 판단은 차갑고 쉽게 사람을 도구화한다. 참된 통찰은 사람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끝까지 품을 수 있는 영적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대중화 되는 시대에 '사람과의 사랑'이라는 인식과 경험은 인간으로서 가장 고결한 가치로 더 크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빌립은 현실적인 계산을 하는 인물로 보인다. 오병이어 앞에서 그는 많은 돈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판단하며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께 말을 건넸다. 성경에서 빌립의 시선은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때로 믿음의 초월성을 놓치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믿음 자체가 기적일 수 있으며, 기적을 빋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라는 모습은 이와는 상충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빌립에게서 배울 능력은 현실 판단력과 질문하는 태도이다. 현대 사회에서 현실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믿음의 도그마에 빠지게 하는 악이 존재하며, 이를 객관적 판단으로 거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악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됨은 현실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실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함께 수용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믿음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악으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며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동일 인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전혀 모랐으며, 바돌로매라는 제자분을 잘 인식하며 살지는 않은 듯하다. 그는 처음에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두고 참된 이스라엘 사람, 속임이 없는 사람이라 말씀하였다. 예수님은 타인의 부족한 부분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가 가진 내면에 커다란 주님의 달란트를 이해하고, 공경하신 듯하다.
바돌로매에게서 배울 능력은 정직성이다. 현대 사회에서 신뢰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정직한 사람은 때로 느려 보이고 손해 보는 듯하지만, 결국 공동체가 의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제자됨은 포장된 유능함보다 숨김없는 진실성을 더 귀하게 여긴다. 근래 반성을 많이 한다. 정직하지 않은 인물, 가식에 휩쓸린 인물들을 보면 불편함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선처럼 그의 제자로서 정직하며, 타인을 바라볼 때 그들이 가진 더 커다란 능력을 크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신께서 주신 선물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한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환영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지만, 예수의 부르심 앞에서 삶의 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계산과 기록에 익숙한 사람이었고, 그 능력은 복음의 증언으로 새롭게 사용되었다.
마태오에게서 배울 능력은 전환 능력이다. 과거의 이력이 언제나 사명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붙들린 과거는 새로운 증언의 재료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것은 경력의 화려함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어떤 의미로 재해석하느냐이다.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냉소로 끝나지 않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깊은 고백으로 나아갔다.
도마에게서 배울 능력은 검증과 진정성의 능력이다. 현대 사회에는 무조건 믿는 태도보다, 진지하게 묻고 확인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다만 제자의 의심은 불신에 머무르지 않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정직한 탐구가 되어야 한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경에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말과 행동은 크게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에게서 배울 능력은 묵묵한 지속성이다. 현대 사회는 눈에 띄는 성과와 빠른 주목을 원하지만,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자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 이름 없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 맡겨진 사명을 조용히 감당하는 사람에게도 깊은 능력이 있다.
다대오는 유다, 곧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예수께 “왜 자신을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고 우리에게만 나타내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그의 질문에는 공동체와 세상을 향한 관심이 담겨 있다.
다대오에게서 배울 능력은 공동체적 질문 능력이다. 좋은 질문은 자기 이익만을 묻지 않는다. 그것은 더 넓은 세계, 타인, 공동체, 시대를 향해 열린다. 현대 사회에서도 깊이 있는 사람은 답을 빨리 내는 사람만이 아니라, 본질적인 질문을 품는 사람이다.
시몬은 열심당원으로 불린다. 그는 강한 민족적 열망과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조차 주님의 주재 아래 두는 일이었다.
시몬에게서 배울 능력은 신념을 다스리는 능력이다. 현대 사회에서 신념은 중요하지만, 절대화된 신념은 타인을 배척하기 쉽다. 제자됨은 자신의 확신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확신을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 정화하라는 부르심이다.
가룟 유다는 공동체의 돈을 맡았던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일정한 신뢰와 관리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주님께 온전히 복속되지 못했고, 결국 욕망과 계산 속에서 비극으로 흘러갔다.
가룟 유다에게서 배울 것은 능력 자체가 아니라, 능력의 위험성이다. 재능이 많아도 내면이 무너지면 그 능력은 공동체를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해치는 도구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붙들고 있는 마음의 방향이다.
오늘 나는 열두 제자를 바라보며 다시 묻게 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능력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 앞에서 나를 크게 보이게 하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바르게 세우는 힘일 것이다.
베드로의 회복, 안드레의 연결, 야고보의 헌신, 요한의 사랑, 빌립의 현실 감각, 바돌로매의 정직, 마태오의 전환, 도마의 탐구,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묵묵함, 다대오의 질문, 시몬의 신념, 그리고 가룟 유다의 경고까지. 이 모든 모습은 오늘의 나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결국 제자됨은 능력 없는 자가 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능력이 누구의 주재 아래 있는지를 묻는 길이다. 능력이 나를 섬기게 할 것인가, 내가 능력을 통해 하나님과 공동체를 섬길 것인가. 오늘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조용히 고백한다. 주님, 나의 재능보다 먼저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
🕊️ 예수님의 제자로 부터 배우는 내세의 삶속 능력들(2026.06.15.)